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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 나이 학력, 건강상태와 근황

by 행복한플라비 2019.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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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외수는 

1946년 9월 10일[음력 8월 15일]에 경남 함양군 수동면 상백리에선 출생했습니다. 

외가에선 태어났습니다고 바깥 외[外]자와 항렬자인 빼어날 수[秀]를 합해서 이름이 이외수가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였는데 그가 3살 때 병으로 타계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직업군인이었고 6.25전쟁에 참전하여 화랑무공훈장까지 받은 분이었습니다. 무튼 이외수는 올해 72세로 알려져있습니다.



아버지는 여러 곳에선 군복무를 하였고 이외수는 아버지를 따라 흔히 학교를 전학다녔는데 고향인 경남 함양군 상내백초등학교, 대구광역시 삼덕초등학교, 강원도 화천군 신풍초등학교, 강원도 양구군 양구초등학교, 강원도 인제군 기린초등학교 등을 거쳤는데요. 6학년 때는 아버지가 제대를 하고 교사가 되었는데 이외수의 담임을 맡기도 했습니다.



강원도 인제군 기린초등학교와 인제중학교를 거쳐 인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4년 춘천교육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1968년 육군에 입대한 뒤 71년 제대하고 72년 춘천교육대학교를 중퇴했습니다.


어릴 적 꿈은 화가로 춘천교대 시절 미전에 입상한 경력도 있었지만 스스로 재능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절망해서 소설을 쓰게 되었습니다고 합니다.참고 이 해에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견습어린이들]이 당선되었으며 73년엔 인제남초등학교 곗골[인제읍 남북리 일대]분교 소사로 잠시 근무하였습니다.



그에겐 있어서 1970년대[특별히 70년대 초]는 가난으로 찌든 절망의 세월이었습니다. 춘천에 살면서 구걸한 경험도 있고 하숙집 방세가 밀려서 쫓겨난 적도 있으며 크림빵으로 하루를 때운다거나 생라면 한 봉지로 며칠을 때운 경험도 있습니다. 




게다가는 빈 쓰레기통이나 개집에 들어가서 하룻밤을 새기도 했습니다고 합니다. 요렇게 젊은 시절을 보낸 것에 자신도 한이 서리고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가끔씩 들어오는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면 뭘 하고 싶으신가?"라는 질문에 "내가 미쳤냐?"라고 대답합니다고.에 합니다. 교육대학교 재학시절에선은 당시 학장이 이외수의 생활사정을 참작해서 조금이나마 이외수의 생활을 도와줄 정도이기도 하였습니다.



1975년 [세대]지에 중편 [훈장]이 신인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정식 등단해서 생활에 숨통이 트이기 시작하였고 강원일보에 잠시 근무하였습니다. 1976년 11월 전영자와 결혼하고 춘천 세종학원과 원주 원일학원에선 강사로 근무하였습니다. 장편 [꿈꾸는 식물]을 발표. 몇편의 단편을 발표하고 창작에만 전념키 위해 79년 모든 직장을 포기하고 이후 전업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초창기 창작 활동에선은 가난한 시절 가끔씩 사창가에 빌붙기도 였는데 이 때의 경험이 [꿈꾸는 식물]을 집필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후 이후 창작집 [겨울나기], 장편 [들개], [칼], [산목], [벽오금학도] 등을 비롯해 에세이 [내 잠속에 비 내리는데], [말더듬이의 겨울수첩] 등을 간행하였습니다. 특별히 초기 대표작으로 꼽히는 [꿈꾸는 식물]과 [장수하늘소] 등은 섬세한 감수성과 환상적 수법이 돋보이는 유미주의적 소설로 신비체험과 초현실세계를 즐겨 다루는 이후의 작품세계를 가늠하게 하는 중요작품으로 관심됩니다.

화가지망생이기도 했던 작가는 90년 나우 갤러리에선 '4인의 에로틱 아트전' 과 94년 신세계 미술관에선 선화[仙畵]개인전을 열었습니다. 

2014년 10월, 위출열로 인해 진단을 받았더니 위암 2기 판정을 받아 일시적으로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1달 가까이 투병생활을 하였습니다.  위 절제 수술까지 수반해야 할 정도의 병세였고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쳐서 고비는 넘겼지만 항암치료는 지속적으로 받았고, 2015년 6월에 항암치료를 마쳤습니다. 


2018년 7월 뜬금없이 음악 단과대학인 남예종[남서울예술종합학교] 학장으로 취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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